이디오크러시 – 바보들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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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에 와닿는 싸늘한 밤공기가 볼을 베어내듯 스치던 11월의 어느 추운 날.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 쪽에 모여있었다. 김장을 위해 공동구매를 했는지 큰 비닐에 가득 담긴 무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다들 크고 미끈한 거 잘 샀다며 한마디씩 하며 기분 좋게 나누신다.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요즘 무가 그렇게 큰 건 화학비료를 엄청 줬기 때문이다. 아는 분이 올해 무 농사를 지어서 알게 되었는데 화학비료를 밑거름으로 주었음에도 심은지 한 달 안에 비료를 두 번이나 더 주더라. 물론 농약도 듬뿍듬뿍. 처음엔 비료를 왜 그렇게 많이 그리고 자주 주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아주머니들이 큰 무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갔다.

몇 주 전, 뒷집 할머니가 강화 순무를 사와 김장을 했는데 금방 물러져버려 못 먹겠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우리 무를 얻어가셨다. 그 땡땡하기로 유명한 강화 순무가 그럴진대 일반 무는 어떨까?

또한 몇 주 전, 유명한 농산물 유통회사와 미팅을 했다. 우리 농법으로 기른 작물을 종류별로 갖다줬는데 무를 칼로 썰어보고 놀라더니 힘을 다해 손가락으로 누르기 시작한다. 뭘 하는걸까 바라보고 있으니 요즘 무는 악력을 가해 누르면 손자국이 남는다더라.

맞다. 무는 크기가 아니라 단단함을 우선으로 골라야한다. 진짜 좋은 무는 칼로 썰기가 힘이 들 정도다. 당연히 김장을 해도 금방 물러지지 않고, 그런 무가 맛도 좋다. 그런대도 크고 이쁘면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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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첫째 날. 주변에서 유일하게 사과 농사를 잘 지었다는 예산의 한 농민이 본인이 속한 작목반 여러 명과 함께 우리 회사를 방문하였다. 풍성한 점심에 다들 즐거운 분위기. 우리 돼지농가의 고기로 만든 수육이 조금 뒤에 식탁에 올라왔다. 한 입 집어먹으니 돼지 특유의 누린내가 입안 가득 퍼진다. 으윽! 뭐야 이거!

동생들에게 물어보니 1차용이란다. 효과 비교를 위해 우리 미생물 조금 먹인 돼지(1차)와 제대로 먹인 돼지(2차)를 받았는데 조금 먹인 고기를 식탁에 내놓은 것이다. 이런 걸 손님용으로 내놓나 싶어 죄송스런 마음에 변명을 했다. “이건 우리 미생물을 조금 먹인거라 냄새가 많이 나네요.”

그랬더니 무슨 소리 하냐는 표정으로 냄새 하나도 안나고 정말 맛있다며 즐겁게 드신다… 응? 뭐지 이거? 표정을 보니 진심인 것 같다. 난 누린내 때문에 먹기가 힘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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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정확히 기억난다. 때는 바야흐로 200X년, 막 대학교에 입학한 코 찔찔이 시절. 기숙사 동기와 닥터 마틴류의 신발을 사러 갔을 때였다.

신발을 하나 보고 있자니 뺀질하게 생긴 30대 후반의 매니저가 다가와 “이 신발은 굽이 높으시구요, 발이 편하게 되어있으시구요, 이러시구요, 저러시구요.”라며 설명을 한다. 친구랑 웃음을 참기가 어찌나 힘들었던지 겨우 빠져나와 “저 사람 신발을 엄청 존경하나보다, 애사심 하나는 최고네.” 라며 낄낄댔다. 정말이지 생소한 말투였다.

그런데 몇 년 뒤. 사물을 존칭하는 이런 말투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이 메뉴가 잘 나가세요, 이 제품은 품절이세요. 이 옷은 허리가 크세요.’ 따위의 말투를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말도 안되는 사물 존칭에 진절머리가 난 와중에 오랜만에 만난 누나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 이야기를 했다. ‘저 점원 스테이크에 대해 존칭쓰는 거 정말 웃기지 않아요?’ 누나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응? 왜?’ (…)

누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선 꽤 긴 설명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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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건강보조식품을 누군가의 사무실에서 발견했다. 선물을 받았단다. 라이스 브랜=미강, 즉 쌀겨다. 현미를 도정하여 백미로 만들 때 깎여 나오는 부분을 말하는 건대, 백미엔 쌀이 가지고 있는 영양분의 5% 밖에 없고 나머지 95%는 쌀눈과 쌀겨(미강)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별 것도 아닌 걸 어렵게 써놨다. ‘스테빌라이즈드’, ‘라이스 브랜’, ‘엑스트라 화인’, ‘무가당’… 무가당? 쌀겨에 설탕을 넣을 이유가 무에 있다고 굳이 이런 표시를…? 포장은 왜이리 화려하지? 라 생각하며 돌려보니 아 글쎄…미국산 쌀이다. 게다가 수입원, 제조원, 판매원이 다 따로 있다. 유통과정이 이런 식인 걸 보니 비싸겠다 싶어 검색을 해보았다.

240g 한 통에 34,500원! 맙소사! RPC에 가면 쌀겨 1kg, 250원이면 살 수가 있다. (공짜로 주는 곳도 많다.) 그런 걸 240g에 34,500원?! 1kg면 14만원 아냐? 250원 짜리를 14만원에? 그것도 미국산을?

찾아보니 나름 한국 최고의 유기농 브랜드 올가(풀무원 계열)에서는 ‘유기농’ 미강을 200g에 2000원에 팔고 있고, 천연뜰이란 곳에서는 유산균발효(…)라며 500g에 5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것도 좀 너무하네-_-; 그럴바에 미강 따로 먹고, 요거트를 많이 먹겠다 싶다…아니 그 전에 현미를 먹음될 거 아닌가…)

마케팅이라 치부하기엔 좀 너무하다. 판매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아무리 파는 사람 마음대로라고 해도 너무한 가격이다. 250원을 14만원에! 게다가 미국산을!

그런데 말이지… 저런 제품이 저런 포장으로 저런 가격에 나왔다는 말은 저걸 산다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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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오크러시라는 영화가 있다. 1년 간의 동면 실험에 참여한 주인공이 사고로 인해 500년 후에 깨어나게 되었는데 세상엔 바보만 남아있더라는 설정의 아무생각 없이 낄낄대며 볼 수 있는 킬링 타임용 B급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꽤 심각한 기분으로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 들어 이 영화가 자주 생각나는 건 왜일까?

미래가 초저능 사회가 된 것에 대한 영화의 설명은, 정크 푸드를 주로 먹고 TV만 보는 저능한 사람들은 아이를 계속 낳고, 똑똑한 사람은 아이 낳기를 점점 미루다 이혼을 하게 되는데 이런 경향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결국 똑똑한 사람은 사라지고 멍청한 사람만 남게 되었다는 것. 헌데 이건 너무 영화적 설정이고(..라고 하기엔 꽤 그럴 듯하다), 지금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들을 왜이리 모를까?

사람들은 왜 저런 말도 안되는 제품을 말도 안되는 가격에 사고, 왜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느끼지 못하는가??왜 몇 년 사이에 사물 존칭이 대다수 서비스 업종에서 쓰일 정도로 퍼졌으며 왜 누나는 그것이 이상하다 생각을 못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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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지(無知)는 확산하며 왜 사람들은 차이에 둔감해지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각각에 대한 원인도 여러가지가 있을테고, 또 그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해 서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나름의 짐작을 한 번 풀어본다.

우선 무지의 확산. 한동안 품고 있던 의문이었는데 트위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위에 말한 사물 존칭에 대한 누군가의 불만에서 나온 답변인데 (알고보니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더라) 희안하기 그지없는 사물 존칭을 쓰지 않으면 화를 내는 고객이 있어서 그런 말투를 쓰도록 직원 교육을 하는 경우도 있단 것이다!! 맙소사!

그런데 바로 이것이 아닐까? 소리내는 아니 진상떠는 바보에 맞춰서 기준과 룰이 바뀐다. 그것이 틀린 것임을 아는 이들은 불평은 있지만 소심해서 혹은 바보가 진상 떨만큼 대범하지 못해서 가만히 있는다. 그렇게 바뀐 엉터리 기준이 꾸준히 쓰여지다보면 민감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덧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된 기준에 길들여지다보면 간혹 옳은 것,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맛보더라도 그 차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위의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high를 right, low를 wrong으로 바꿔도 상관없겠다.

(맛이나 다른 가치를 객관화, 수치화하긴 힘들겠지만) 제일 왼쪽 그림은 high와 low의 실제 차이를 나타낸다. 하지만 본인의 기준이 low에 길들여져 있다면 가끔 좋은 것을 먹거나 경험하더라도 그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일을 하다가 그런 일을 많이 겪게 되는데 위의 돼지고기 누린내도 마찬가지고, 채소도 마찬가지다. 평소 좋은 먹거리에 신경쓰고 많이 ‘먹어본’ 사람은 차이를 대번 아는데, 그게 아닌 사람은 차이점을 크게 그리고 명확하게 느끼지 못하고 주로 표현하는 말이라곤 신선하다, 맛있다 정도가 전부이다.

반면, 평소 기준이 high에 맞춰져 있는 사람이 저질을 경험한다면 실제보다 훨씬 큰 차이를 느낀다. 소위 까탈스러워지는 것이다. 이건 내게 해당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다른 것은 불평없이…아니 불평도 좀 하며 먹지만 도저히 고기집에서 나오는 상추류만큼은 못 먹겠다. 농약 문제를 떠나서 맛이 불쾌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게 다 화학비료 탓인데 화학비료로 기른 작물은 뒷맛이 찝찌름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할 뿐더러 low에 맞춰진 기준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상추맛은 원래 쓴 것 (사실은 찝찌름한 맛이고, 쓴 맛과 찝찌름한 맛은 다르다) 돼지는 원래 누린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물 존칭에 대해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선 바른 말을 쓰더라도 차이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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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자. 개개인이 가치 판단을 할 땐 어떤 기준점이 있어야 하고, 개인이 그 분야에 대해 깊은 조예가 있지 않은 이상 그 기준점은 사회 전체에 일반적으로 형성된 그것에서 빌려온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동안 진상떠는 바보가 룰을 만들어버림으로써 사회 전체의 기준이 낮아졌고 거기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익숙해지고 나니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이를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현상에 답이 들어있다.

우선 바보가 진상떠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아는 사람이 목소리를 내야한다. 무작정 크다고 무가 좋은 것이 아니라고, 이 옷이 품절이시라 미천한 제가 아쉬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250원 짜리 쌀겨를 14만원에 사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그렇다면 익숙해짐이란 장벽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즉, low에 맞춰진 기준을 어떻게 하면 끌어올릴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도 일을 하며, 우리 먹거리를 나눠주며 찾은 것인데 high와 low의 비교를 동시에 하게 해야한다. 지금 이 채소의 찝찌름한 맛을 당장 못 느끼거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채소와 동시에 먹어가며 비교를 하면 차이를 잘 알 수가 있다. 돼지도, 무도 마찬가지고 사물 존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 번의 설명과 비교로 low에 맞춰진 기준을 끌어올릴 수는 없기에 진상과 예의의 경계를 고려해 목소리를 얼마나 크게 그리고 얼마나 자주 내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꾸준히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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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하며 개탄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글은 스스로에 대한 새해 다짐이다. 나 역시 일을 하기 전엔 농업, 환경, 먹거리에 대해 무지했고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또한 내 분야가 아니면 잘 모르고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손도 대기 힘든 바보다.

아는 분야에서라도 침묵의 지식인(표현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이 되지 말자는 다짐, 모르는 분야는 아무 생각없이 사회의 기준을 따라가지 말고 눈과 귀와 마음을 더 크게 열자는 다짐을 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해본다.

“이디오크러시 – 바보들의 세상”의 5개의 생각

  1. 힝 언제봐도 좋은글, 그런데 항상 댓글은 저만 다는 것 같은건 착각일까요? 마트에서 상추사먹을 때마다 그 맛이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어요. 그런데 워낙 야채를 좋아하기도 하고 샐러드 드레싱맛으로 좀 가려가면서 먹었네요. 역시 마트에서 파는 야채는 다 어쩔수 없나봐요. 양질의 유기농 야채를 먹으면서 평소에 소식 하는게 더 몸에 좋을 것 같은데 전 오늘도 치맥을 찾고있습니다. 며칠전부터 갑자기 너무 먹고 싶어져서. 케이에프씨가서 닭사고 맥주 따로사서 강가에서 치맥치맥하고 싶은데 여기선 왜 이게 그렇게 어려운지 ㅠ 엉엉

    1. 그닥 착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드물디 드문 댓글이라 감사할 따름!! 요즘 한국에선 꽃구경+맥주 일명 꽃맥이 유행이라는 소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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