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Together – 군중 속의 고독

얼마 전?에스티마님께서?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우리들이란 포스팅을 하셨다. 나 뿐 아니라 요즘의 누구나 공감하고 고민 중일 사안이라 끄덕끄덕하며 읽은 글이다.

요즘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데 팀원 중 한 분이 마침 에스티마님의 글을 읽고?터클 교수의 NYT 기사를 주제로 올려주셨다. 읽어봤는데 좋은 내용인 것 같아, 공부 겸 번역…이지만 의역, 오역이 넘쳐 내용을 못 알아먹을 수도 있겠다(…)

에스티마님 글의 댓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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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ight From Conversation
대화로부터의 도피

테크놀러지로 뒤덮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언제나 통신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연결(connection)’의 대가로 ‘대화(conversation)’을 희생하고 있다.

집에서, 가족들은 다 함께 앉아, 문자를 보내고 이메일을 읽는다. 직장에서, 중역들은 회의 시간에 문자를 한다. 또한 수업을 하는 동안이나 데이트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문자를 하고 온라인 쇼핑을 하고, 페이스북에 접속한다. 학생들은 내게 요즘 시대에 필요한 중요한 요령을 하나 가르쳐 줬다. 문자를 하는 동안 같이 있는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라는 것이다. 꽤 어려운 일이지만, 가능한 기술이다.

지난 15년 동안 나는 모바일 연결의 테크놀러지에 대해 공부를 했고, 모든 연령대와 다양한 환경에 속해 있는 수백명의 사람과 항시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는 그들의 삶(plugged-in lives)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를 통해 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하고 다니는 이 작은 기기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방식 뿐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도 바꿔놓을 만큼 강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함께 하는 외로움 (alone together)’이라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언제든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디에서든 우리가 원하는 그 어느 곳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인생을 우리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그려 나갈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는 자신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곳을 선택할 수 있길 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그곳에 언제든지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참여할 수도 빠질 수도)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무리의 한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고, 자신이 속한 그룹에 충성을 다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왔다.

우리의 동료 직원들은 임원 회의에 참석하길 원하지만, 그들이 관심 있어하는 분야에만 신경을 쏟을 수 있길 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이 좋은 생각이라 말하겠지만, 결국 타인과 계속 ‘연결’은 되어 있음에도 타인과의 ‘접촉’은 피하게 될 것이다.

한 직장인은 이젠 직장에서 동료가 없다고 호소한다. 그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접촉하지도 않고, 전화도 않는다. 다른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이메일 읽고 쓰느라 너무 바쁘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잠시 생각하더니 그가 했던 말을 정정했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 같군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가 방해받길 원하지 않았던 겁니다. 좀 더 접촉을 했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냥 블랙베리나 만지작거렸네요.”

거의 모든 걸 문자로 주고받는 16살 짜리 소년은 아쉬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대화라는 걸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싶어요.”

오늘날 직장에선 대화 나누는 걸 무서워하는 젊은 사람들이 이어폰을 끼고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대학 도서관이나 하이테크 스타트업의 캠퍼스를 걸어가보면 똑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지만, 각자는 키보드와 작은 터치 스크린에 집중하면서 각자의 세계(거품) 안에 갇혀있다. 보스톤 법률 회사의 한 중역은 그의 사무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젊은 직원들이 테크놀러지라는 이름의 수트를 빼입고 있다. 랩탑, 아이팟 그리고 여러개의 핸드폰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이어폰을 끼고 있다. “마치 파일럿처럼. 그들의 책상을 마치 조종석처럼 만들어놔요.” 조종석에 앉아 있는 젊은 변호사들과 함께, 그 사무실엔 정적이 감돈다. 깨어지기를 거부하는 정적 말이다.

‘연결’이라는 이름의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 접속하며 편안해한다. 주의 깊게 거리를 두면서 말이다. 하지만 테크놀러지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만큼의 거리를 둔 상태로는, 타인을 충분히 알 수는 없다.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고, 딱 그정도의 거리. 이건?골디락스 효과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문자와 이메일은 우리를 우리가 원하는 존재로 보여지게끔 한다. 즉, 우리 스스로를 편집(edit)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원한다면, 삭제를 할 수도 있다. 혹은 수정을 하거나. 목소리, 표정, 신체 등. 너무 많이도 아니고, 적게도 아니고, 딱 그만큼만.

인간 관계는 복잡한 일이다. 지저분하고 힘도 든다. 우리는 테크놀로지로 관계 맺음의 그러한 습성을 배제시켜 버린다. 그에 따라 ‘대화(conversation)’에서 ‘연결(connection)’로의 이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자신의 가치를 축소하는 과정이다. 더 나쁜 것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보면 ‘대화’와 ‘연결’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우리는 온라인에서의 작은 ‘연결’들이 실제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아니다. 이메일,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것들은 정치, 광고, 로맨스, 우정 등에 그것만의 영역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던지 간에 대화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미미한 ‘연결’을 통해 조각난 정보를 모으거나 “널 생각하고 있어” “널 사랑해” 따위의 말을 전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연결은 타인을 ‘이해(understanding)’하거나 ‘잘 아는(knowing)’ 데 적용되지 않는다. 대화를 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주의를 ‘기울인다’. 톤과 뉘앙스에도 신경을 쓸 수 있다. 대화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사물을 볼 수도 있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는 느리게 펼쳐진다. 이는 인내도 가르친다. 디지털 기기로 통신을 할 때, 우리는 다른 습성을 배운다. 온라인 연결의 볼륨과 속도를 키우면서, 우리는 좀 더 빠른 대답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좀 더 간단한 질문만 해댄다. 심지어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도 의사소통을 단순화시킨다. 이건 마치 우리 자신을 케이블 뉴스에 올려놓는 것과 같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이용해 우리 자신을 소모시키고 있다.”

우리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대화로부터의 도피는 자기 자신을 투영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과 같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는 계속해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하지만 (대화를 잃어버림으로써) 진정한 자기 자신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동기가 줄어들게 된다. 대화를 통한 자기 자신의 투영은 신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3000명의 페이스북 친구들에게서 이러한 것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대화를 단순화시키고, 그러한 상태로 지내는 것이 익숙해짐에 따라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경향이 줄어들게 된다. 심한 사람들은 컴퓨터를 상담사처럼 여기기도 한다. 한 고등학교 학생은 내게 데이트에 대해 아버지 대신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이야기 하는 것이 낫다고 고백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데이터베이스를 훨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Siri가 좀 더 발전해서 “그녀”가 베스트 프렌드처럼 되길 희망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어 줄 그런 존재말이다.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과 테크놀로지의 관계성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나는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난 이 말이 왜 익명의 많은 리스너들을 제공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나 트위터 피드에 우리가 더 끌리는지를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왜 우리를 더 챙겨주는 것 같은 기계에 더 말을 해대는지도. 세계 각지의 연구자들은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벗으로 느껴질 수 있는 소셜 로봇을 발명하는데 여념이 없다.

연구를 하는 동안 가장 잊을 수 없는 경험 중 하나는, 새끼 물개 모양의 이러한 로봇을 노인요양시설에 갖다주었더니, 한 할머니가 그 로봇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먼저 보낸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면이었다. 로봇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대화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할머니는 편안함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일을 놀라운 것이라 여긴다. 데이트에 관해 인공지능의 조언을 구하는 고등학생과 컴퓨터를 상담사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경우는, 사람들이 ‘연결’과 ‘대화’의 차이를 얼마나 헷갈려 하는지, 왜 인간의 삶의 궤적이라곤 경험해보지 못한 기계 따위에게 사랑과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어버린걸까?

우리는 테크놀러지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타인에게 더 적은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요구없이 우정이란 환상을 제공해주는 테크놀러지에 점점 더 이끌리고 있다. 이러한 기기들은 세 가지 강력한 환상을 제공한다. 첫째, 내 말을 누군가가 항상 들어준다는 환상. 둘째, 우리가 원하는 곳에만 자신의 관심을 쏟을 수 있다는 환상. 셋째, 결코 홀로가 아니라는 환상. 우리의 새로운 기기는 홀로(alone)임을 치료할 수 있는 어떤 문제(problem)로 만들어 놓았다.

아주 잠시라도 홀로일 때, 사람들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기기를 만진다. 이러한 연결은 치료가 아니라 하나의 증상이다. 그리고 연결에 대한 꾸준하고 유연한 충동은 존재 방식을 새롭게 규정짓는다. “나는 공유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라고 말이다.

우리는 테크놀러지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규정지으려 한다. 예전엔 “이런 감정이 들어. 전화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을 했다면 지금은 “감정을 가지고 싶어. 문자를 보내야겠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좀 더 많은 걸 느끼기 위해 우리는 ‘연결’을 한다. 그렇게 연결을 갈망하며 우리는 고독에서 달아나려 한다. 우리 자신을 해체시키고 다시 모을 수 있게 만드는 그 고독 말이다. 하지만 고독을 견디는 능력을 희생시키며, 타인과 연결되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진정한 모습은 알 수가 없다. 이는 마치 점점 더 연약해지는 우리 자신을 떠받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지속적인 연결이 자신을 덜 외롭게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가 참이다. 만약?우리가 홀로임을 견디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외로워질 것이다. 만약 우리 아이들에게 홀로가 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오로지 외로워질 것이다.

나는 대화의 신봉자다. 대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 우리 가족은 부엌과 식당을 성스러운 구역으로 설정했다. 또한 우리 차를 기기 사용을 할 수 없는 곳으로 설정을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대화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직장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다. 의사소통(communicating) 하느라 너무 바빠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talk) 하기 힘든 그 공간 말이다. 직원이라면 캐쥬얼한 금요일(casual Fridays)을 요청할 수도 있다. 메니저라면 목요일을 대화하는 날로(conversational Thursdays) 지정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문자와 이메일 그리고 페이스북 포스트 속에서 지루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화는 전혀 편집되지 않은 어떤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망설이고 더듬대고 침묵을 지키며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드러내 보일 수 있다.

Cape Cod의 작은 집에서 이번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수십 년간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걸었었던 모래 언덕을 걸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머리를 치켜들고, 물과 하늘, 모래와 사람들을 바라보며 걷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타이핑을 하며 걷는다. 친구나 파트너,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디바이스에 연결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고개를 들라. 서로를 바라보라. 그리고 대화를 시작하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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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클 교수의 요지를 정확히 알고 공감을 하면서도 100% 동의하기는 힘든 것이 SNS 이전에도 타인을 이해하기란, 타인과 통하기란 어렵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나 스스로가 내향적인 사람이라서 그런지, 주위 친구들과는 늘 관심사가 달라서 그랬는지 Alone Together는 내게 꽤나 흔한 경우였다. 오히려 (내가 주로 쓰는 SNS인) 트위터를 통해 누군가와 통한다는 ‘느낌’을 받음으로써 외로움이 덜해진 측면도 있다. 소셜컴퓨팅연구소의 블로그 포스팅인?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더 느끼는가??라는 글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며 터클 교수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녀의?TED 발표?역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던터라 사람들은 기술의 사용이 우리의 외로움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오해할 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데이타가 보여주듯이 우리가 소셜미디어나 기술로 더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SNS는 우리에게 더 많은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고 가까운 친구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지 대화의 상실로 인한 사회성 결여를 이끌어 내고 있지는 않다. 어쩌면 터클 교수의 판단은 그녀가 전통적인 시각으로 사람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터클 교수의 얘기 중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에 비해 더 외로워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친밀해 지려고 하는 것에는 오히려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변화이다.

오늘 뉴스에서 홀로 사는 가구 비중이 25.3%로 이제 가구 구성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우리가 현재 느끼는 외로움은 이러한 사회 구성과 현대성이 가져오는 것이지 기술이나 SNS의 사용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SNS는 오히려 이러한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줄 수 있는 또 다른 도구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블로그를 쓰다가 문득 드는 생각은 트위터를 통해 느꼈던 그 친밀감이 과연 진짜인가? 하는 것이다.

나의 어떤 멘션에 여럿이 공감해주고 멘션을 주고받을 때 즐거웠던 ‘만큼’,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을 때 ‘더’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았는지…이름 모를 호의에 고마웠던 ‘만큼’, 이유 모를 시큰둥함에 ‘더’ 상처를 받지 않았는지.. SNS 세계에서 다른 이들끼리 친밀해보이는 ‘만큼’, 그 속에 들지 못 한 나는 ‘더’ 쓸쓸하진 않았는지…현실의 상대가 살갑게 느껴지는 ‘만큼’, 그 상대가 온라인의 세계의 친밀함에 빠져있는 순간은 ‘더’ 아픈 것은 아닌지…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터클 교수의 ‘우리가 홀로임을 견디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외로워 질 것 (If we are unable to be alone, we are far more likely to be lonely)’ 이란 말이 더 사무치게 다가온다. 인스턴트 같은 SNS 친밀감의 휘발성과 중독성 때문에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고독이, 오히려 나를 강하게 했던 고독이 점점 더 무서워지는 건 아닐까.

덧1. 기사의 내용 중 ‘문자, 이메일, 포스팅은 우리를 우리가 원하는 존재로 보여지게끔 한다. (Texting and e-mail and posting let us present the self we want to be.)’ 라는 구절이 있다. 이 문장을 읽고 뜨끔했던 이유가 트위터를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난 내가 보여지고 싶은 모습대로 보이려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40대 곰돌이 푸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즘 귀여움을 내세우는 플픽으로 이미지 전환을 꾀한다는 소식…(쿨럭)….은 농담이고 좀 자연스럽게 트위터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2. 예전에는 정성스레 구성한 타임라인에 흐르는 소리 하나하나 놓치기 아까워 바쁜 와중에도 틈만 나면 폰을 만지작 대었는데, 5일 정도 트위터를 끊어보고, 선거 기간에 피로감을 느껴보고, 정말 집중해야하는 일을 하고, 그래야 하는 사람과 긴 시간을 보내다보니, 놓친 이야기와 좋은 글들…언젠가 인연이 있으면 나랑 마주치겠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며,자연스레 트위터와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된다.

덧3. 하지만 SNS의 모든 친밀감이 진짜는 아닐테지만 모두가 가짜는 아닐터. 모두 다 버리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모두에게 다가가기엔 피곤하다. 현실에서 이어질 만큼만 정을 두고 이미 정을 둔 분들과는 만나려고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

덧4. 그러므로 저랑 좀 친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만나요. 제가 밥이나 술 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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