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먹거리인가?

2010년 마지막 날, 블로깅을 새로이 시작하던 나의 목표는 ‘자기 수양’. 그래서 방문자 유입수엔 신경쓰지 않고 (사실 아무도 안오면 상처받을까봐 핑계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 배울만한 것, 감동받은 것들을 정리하는데 초점을 두기로 했었다. (그러면서 페북이나 트위터 버튼은 덕지덕지 달았..)

하지만 먹거리와 환경 관련 내용을 꾸준히 남기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자는 방향으로 블로그의 성격을 바꾸게 된 대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다.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 맛

첫 번째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농민 상대로 강의를 마치면, 실제 우리 기술의 효과가 어떤지, 작물이 맛이 얼마나 다른지 보라고 우리가 기른 채소를 나눠준다. 헌데 농민분이 드시더시 “상추는 상추 맛이 나고, 쑥갓은 쑥갓 맛이 나네?!”라 이야기를 하며 놀래는게 아닌가? 그 말을 듣고는 한동안 멍했다. ‘저게 무슨 말인가? 당연한 말을 왜그리 신기하다는 듯이 하는가?’ 하며. 며칠의 고민 끝에?요즘 농산물은 작물 원래의 맛이 나질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 기술로 키운 것만 먹던 나로선 아주 힘들게 얻은 답이었다.

옛날엔 지금처럼 음식이 맛없지 않았어. 물자를 많이 안 들여도 음식이 맛깔스러웠거든. (중략) 예전엔 호박 하나만 넣어도 국물이 달착지근했는데, 요즘은 안 그래. 거름을 안 써서 그래. (채소가) 계절 없이 나와서 그래.

윤순이(101) 할머니 인터뷰 中 (출처)

기억조차 없다

두 번째는 오랜만에 대학 후배를 만나 식사를 하며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해 줄 때였다.

산들 : 상추 먹어봐. 뒷맛이 찝찔하고 비리지? 이거 다 요소(질소)비료 맛이야. 요즘 상추 쓰기만 하지? 안그래. 원래 쓴 맛 뒤에 오는 고유의 달달한 향이 있어.

라고 열변을 토했더니 이 녀석이

후배 : 원래 이런 맛 아냐? 찝찔하다고? 잘 모르겠는데? 집에서 부모님이 텃밭에서 기르는거랑 비슷한대?

라며 전혀 이해를 못 했었다. 그 때 확실히 깨달았다. 아..요즘 사람들에겐 고유의 그 맛과 향에 대한 기억조차 존재하지 않는구나

소비자의 무지

세 번째는 현재 우리 농법을 쓰는 농민을 방문했을 때.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에 장난 안 쳐야지…라는 의지가 강하신 분인데, 주위 농가들끼리 모였을 때마다 “친환경으로 가야된다. 그래서 브랜드를 만들어야 상인 상대로도 협상력이 생겨 좋다.”란 얘기를 종종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이 이야기를 하는 당시에는 모두 맞다며 동의를 하는데, 가락시장(한국 최대 규모의 도매시장)의 시세가 오르면 너도나도 질소비료를 준단다. 질소비료를 주면 작물의 지상부가 쑥쑥 자라는데, 가격이 좋을 때 빨리 키워 빨리 출하를 해야하기 때문-_-; 이는 도축 전에 물을 왕창 먹여 살을 찌운 가축과 다를 바가 없다. 또한 화학비료는 자연스레 농약 사용을 부르는데 이건 이전 포스팅(유기농의 맹점)에서도 강조했으니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그러면서 “시세도 시세지만, 소비자들이 그런 걸(=화학비료, 농약에 찌든 것) 찾는다.”라 덧붙인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성장을 위해 질소비료를 주면 녹색을 띠는 작물은 그 색이 매우 짙어진다. 과다한 질소는 작물의 맛도 떨어뜨리지만, 인체에 들어가면 아질산성질소로 변해 독으로 작용하는데, 문제는 그러한 짙은 녹색을, ‘건강한 상태’라 착각을 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것. 소비자들이 잘못된 걸 찾으니, 판매자들은 생산자인 농민들한테 요구를 하게 된다. 질소비료 더 쓰라고. (실제 그 농민이 내게 한 말이다, 위의 사진은 우리 농법을 적용한 그 농민의 하우스)

왜 먹거리인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란 그레샴의 법칙처럼,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시대이다. 농민조차 상추에서 상추 맛이 난다며 신기해하고, 요즘 사람들은 작물 본연의 맛을 모르고 있으며, 무지에 의해 건강하지 않은 먹거리를 요구하고 있다.

각각의 사건은 내게 충격을 주었다. 먹거리의 중요성과 관심도에 비해,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고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나 역시 관련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제대로 된 것을 맛 볼 수 없었다면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가 원하면 잘못된 방법이라도 따른다’는 것에서 어떠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 누구보다도 소비자들에게 힘이 있구나, 그러자면 소비자들이 똑똑해져야겠구나…하고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먹거리에 ‘제대로 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현장에서 부딪히며 알게 된 사항들을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것이 더 나아가 환경문제(오염된 토양, GMO, 생물다양성 등)로도 그 관심을 확장시킬 수 있으면 하는게 내 큰 바람이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환경문제로 확장이 될 수 있으니깐.

해서 고민을 하다 먹거리와 환경 관련 포스팅을 하기 시작했고, 또한 제대로 된 먹거리가 어떤 건지 맛을 봐야만 알 수 있겠다 싶어 직접 기른 채소를 나눠주는 이벤트도 기획했다.

호응이 별로 없을지라도 꾸준히 해 볼 생각이다.

“왜 먹거리인가?”의 3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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