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곤의 선물 – 오늘…처음으로 “연극”을 보았다.

2008년에 보고 꼭 다시 봐야지 마음 먹었던 작품. 두 번째 보니 새로운 감동과 깨달음이 있어 좋았다. 해서 당시 논문보다 열심히 쓴 감상문-_-;에 첨언하여 업뎃.

(내용누설 심함 – 왠만하면 연극을 본 사람만 보시길)

스스로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그리고 항상 관념과 현실의 간극에서 헤매이고 갈등하지만, 나는 꽤나 도덕적이고 규범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것이나 침을 뱉는 것을 혐오하고 담배를 안 피우는 것도 남에게 피해주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크다. 물론 종종 자기합리화란 장치로 법을 어기기도 한다. 나도 인간이니까.

어찌보면 생각하는 방식이 구식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남은 한 쪽 뺨도 내밀어라….따위의 자기희생적인 어구들이 나에겐 달콤하게 들렸고 거창한 의미를 두는 대신 난 그러한 ‘본능’을 따르기로 했다. 파격과 일탈을 꿈꾸면서도 질서 또한 사랑하는 것이 나란 자의 아이덴티티인 것이다.

 

여기 한 극작가가 있다. 애드워드 담슨(정원중, 이전엔 정동환). God Damn Son(담슨)이라 스스로를 일컫는 자기파괴적이고 오만한 이 인물은 극작가의 미덕이 ‘극단적’인 것에 있다고 믿는 자다. 연극을 종교로 삼는 그는 복수의 순환고리를 끊기 위해선 나머지 한쪽을 멸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한때 천재 극작가로 추앙받다 후속작의 실패로 두번째 아내 헬렌(김소희, 이전엔 서이숙)과 함께 비극의 고향 그리스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그가 죽었다.

사인은 자살.

몇달 뒤, 연극학 교수인 그의 (태어나기도 전에 버림받은) 아들 필립 담슨(이동준, 이전엔 박윤희)이 헬렌을 찾아와 아버지의 평전을 자신이 쓰게 허락해 달라 간청한다. 평전 작업을 통해 아버지의 인생의 궤적을 따라가며 자신의 삶에서 우상으로만 존재하던 아버지를 실체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수차례의 거절 끝에 헬렌은 허락한다.

 

평화주의자 혹은 이상/관념주의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헬렌은 대척점에 있는 것이 늘 그러하듯 본능을 미덕으로, 희곡을 종교로 숭배하는 애드워드에게 자연스럽게 끌리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로 여행을 가고 그곳에서?‘발구르기춤’을 추며 본능이 잉태하는 순수한 기쁨을 만끽한다.

다시 영국(현실)으로 돌아온 담슨은 현실에 절망하지만, 고곤(메두사)의 목을 베러 가는 페르세우스에게 하늘을 나르는 신발, 모습을 숨기는 모자, 고곤의 목을 벨 수 있는 낫, 그리고 잘 닦은 방패를 준 아데나(아테나) 여신처럼, 극단으로 치우치려는 담슨에게 헬렌은 극 뒤에 그를 숨기고(모자),?진실을 보는 방법은 투영 밖에 없다(방패)는 명제를 주지시키며 같이 연극을 완성한다. 물론 그 연극은 크게 성공한다.

하지만 성공과 그에 따른 찬사는 되려 독이 되어 그를 점점 더 본능에 치우치게 하고, 연극이란 아이의 잉태 과정에서 헬렌은 배제되게 된다.

어느날, 담슨은 라디오를 통해 테러에 아들이 희생된 아버지가 테러리스트들을 용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악은 악으로, 복수는 복수로 갚아야 한다고 믿는 담슨은 라디오의 뉴스를 위선과 기만의 정수로 보고 용서와 관용을 미덕으로 삼는 헬렌과 본격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담슨은 헬렌을 그의 색깔로, 본능이 펄떡이는 붉은 색으로 물들이고 싶어하는 것이다.

라디오 뉴스를 모티브로 한, 테러리스트에게 아들을 희생당한 법무장관인 어머니가 결국 잔인하게 복수를 하고 희열의?‘발구르기춤’을 추는 것으로 끝나는 ‘아일랜드’란 작품은 관객의 혹평을 받게 되고 결국 담슨은 그의 종교인 희곡에게서 버림받게 된다.

 

헬렌과 담슨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헬렌은 ‘고곤’과 ‘페르세우스’ 그리고 ‘아테나’를 차용한 그들만의 언어로 담슨에게 최후의 통첩을 한다.

아데나(헬렌)에게 고곤의 머리(본능,연극 등등)를 바쳐야 될 페르세우스(담슨)가 고곤의 머리를 가짐으로써 스스로 고곤으로 변했으며 이는 그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자 그의 주변(헬렌, 필립) 또한 돌로 만들어 황폐화시키는 것이라고…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헬렌의 마지막 메세지를 들은 담슨은 그녀와의 첫 번째 그리스 여행 때처럼 올리브 나무가 그려진 비누로 그의 몸을 깨끗이함으로써 죄를 사하고 새로 시작하겠다고 한다. 비누를 들고 그를 씻겨주던, 아니 그의 죄를 사하려던 헬렌. 하지만 비누엔 담슨이 숨겨둔 면도날이 들어있었고, 헬렌은 담슨의 죄를 죽이고 태우는(킬번-영국에서 살았던 동네이름) 대신 담슨의 의도대로 그녀 스스로가 붉은 색(담슨의 피, 담슨이 사용했던 잉크의 색깔)에 물들게 된다. 담슨은 자살이자 타살인 ‘죽음’으로써 그녀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연극의 제목이 <고곤의 선물>인 이유가 들어있다.?고곤의 머리(진실)를 베어 방패에 꽂지 않았기 때문에, 즉 ‘투영’해서 진실(고곤의 머리)을 들여다보지 않고 본능대로 직면하고 그것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담슨은 스스로가 고곤이 되었다.?담슨=고곤은 스스로를 바침으로써 즉, 선물함으로써?헬렌 역시 고곤이 되게끔 하려는 것이다. (이는 크롬웰의 이야기와도 얽히는대 영웅은 우상을 파괴함으로써 스스로가 우상이 되어버리고 동시에 파괴의 대상이 된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가 새겨진 비누 안에 들어있는 면도날, 즉 담슨=고곤을 베어버린 면도날은 신성한 원고지를 잘라낼 때 썼던 그 칼날이자 아테나가 페르세우스에게 주었던 고곤의 머리를 벨 수 있는 낫이었다.

숨겨진 진실에 다다른 필립과 헬렌. 필립은 그의 우상인 아버지가 실체화되며 오히려 파괴되는 것을 느끼고 아마 아버지를 위해서라기 보단 그 자신을 위해 평전의 완성을 포기한다. 그러나 이미 담슨의 피를 뒤집어 쓴, 복수엔 복수라는 담슨의 본능에 물들어버린 헬렌은 평전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담슨을 부셔버리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담슨의 의도이다. 용서의 헬렌을 복수로 피로 붉은 색으로 물들이는 것. 그것이 담슨의 복수의 완성인 것이다.

필립의 만류로 이성이라는 끈을 겨우 붙잡은 헬렌. 담슨이 꿈꾸던 복수는 완성되지 못하고, 헬렌은 안정을 찾는 듯하나 곧 담슨의 “춤을 춰”라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본능의 축제가 성공리에 끝남을 축하하는 그?‘발구르기춤’을 말이다.

헬렌은, 그녀는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처절하게 담슨을 용서하며 복수의 완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연극은 끝을 맺는다.

하지만….하지만 말이다. 담슨이 꿈꾸던 복수의 완성, 즉 헬렌이 담슨을 세상에서 지움으로 담슨을 오히려 완성하는 아이러니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헬렌 또한 용서란 도구로 담슨의 의도를 무너뜨림으로써 담슨에게 ‘복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두에 밝혔듯 난 스스로 도덕적이고 관념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연극을 보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틀린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다. 복수가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일까? 헬렌은 그토록 처.절.한.용.서.를 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 용서는 누구를 위한 구원인가??결국…. 관객에게 있어 고곤의 선물이란 기존의 관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의도적 낯설음이 아닐까?

 

이 연극은 결국 헬렌으로 상징되는 이성, 용서와 담슨이 대변하는 본능, 복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둘의 화합과 대립은 비극의 원류인 그리스 신화 중 고곤(메두사)과 페르세우스의 이야기의 차용과 변형에서 뚜렷해지고 극에 달한다. 이때 아데나의 마음과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역들의 코러스와 안무는 희곡의 연극적 요소를 극대화시키며 관객의 마음 속에서도 그러한 대립의 과정이 일어나게끔 한다.

하지만 연극의 여운을 마음에 품고 집에 와 극중 나온 아가멤논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나는 더욱 놀라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 중 고곤의 이야기를 연극의 주요도구로 쓰긴 했지만 전체적인 틀은 아가멤논 이야기의 변형인 것이다. 나처럼 그리스, 로마신화에 약한 이들을 위해 네이허 백과사전을 바탕으로 부가설명을 해본다.

1. 아가멤논의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군의 총지휘관으로 출진하였는데, 여신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으로 출항을 할 수 없게 되자 자기의 딸 이피게니아를 산 제물로 바쳐 노여움을 풀었다. (이는 극의 초반, 헬렌과 담슨의 담화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다.)

2.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의 왕녀 카산드라를 데리고 귀국한 그는, 그가 집을 비운 동안 밀통하고 있던 아내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카산드라와 함께 죽임을 당한다. 극중 내용으로 보아 이들도 목욕탕에서 살해를 당한 듯하다.

3. 그러자 그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살해함으로써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

그럼 연극과 아가멤논의 이야기를 비교해보자.

1. 담슨은 그의 과거(필립) 혹은 헬렌과의 사이에서의 아기를 희생시킴으로 극작가로서의 성공을 거둔다.

2. 큰 성공을 거둔 후, 헬렌과 대립하게 되고 결국 헬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역시 목욕탕에서.

하지만 마지막에 변형이 일어난다.

3. 그의 아들 필립이 헬렌을 만류함으로써 아버지의 복수의 완성을 좌절시킨다.

모든 비극이 그리스 신화의 변형이라는 혹자의 말처럼 이 연극 역시 그리스 비극을 적극 차용, 변형하였다. 하지만 이토록 강렬하고(고곤) 이토록 은밀(아가멤논)할 줄이야…..원작자 피터 쉐퍼의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춤을 춰”, “용서할거야”란 울림의 잔향과 함께 연극이 끝나고…난 남은 힘을 짜내 겨우겨우 박수를 칠 수 있었다. 원래 어떤 공연이든 특유의 ‘오~’하는 소리와 함께 오버해서 환호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온몸이 마비되어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으나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설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박수를 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이런 생경한 경험과 함께….오늘 처음으로?“연극”을 본 기분이 들었다. 전에 보았던 건 연극이 아니었구나, 그냥 버라이어티 쇼였구나 하는 생각. 물론 그 전에 내가 본 연극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고곤의 선물’의 잔상이 강렬할 뿐.

앞으로 기회가 되면 피터 쉐퍼의 모든 작품을 챙겨봐야겠다. 말로만 듣던 체홉의 작품도 챙겨봐야지.

나는 오늘, 처음으로, ‘연극’을 보았다.

ps1. 이 연극의 주인공은 서이숙 씨라 감히 말하고 싶다. 모두의 연기, 심지어 단역들까지도 후덜덜하게 연기를 했지만 그녀는 극의 모든 곳에서 그녀만의 숨결로 존재했고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2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을 아주 짧게 느껴지게 하는 마법을 부렸다….. 라고 썼었는데 동일한 찬사를 김소희 씨에게 보내고 싶다. 헌데 김소희 씨…사진이 잘 안 받으시는 듯. 실물이 훨~~~~~씬 낫다.

ps2. 2008년엔 코러스로 나온 아는 동생이 할인권을 줘서 간 것이다. 내가 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사는, 그래서 동생이라도 은근 존경하지만, 그렇다고 친하지는 않는 녀석이었는데 덕분에 연기하는 사람들의 열정에 감화되었었다. 연극 중 코러스 부대가 나오는 장면장면들은 최고였다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ps3. 2008년 정동화 씨의 담슨을 본 입장에서는 정원중 씨의 연기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평소에 푸근한 인상만 많이 봐서 그런 것일까 생각해봤는데.. 그건 아닌 듯. 하지만 정동화 씨라는 후덜덜한 비교 대상이 있어 그렇지 연기가 못하다는 건 절대 아님.

ps4. 페르세우스/아테나 신화와 아가멤논의 이야기 그리고 올리버 크롬웰북아일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보면 더 재밌다.

ps5. 포스팅 제목은 재탕했다 ㅡㅁㅡ;; 아무래도 저 제목보다 나은 걸 못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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