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행복이 공존하는 공간 – 김환기 회고전

2012년 1월 5일. 고추장의 인연으로 정경화 선생님의 초청을 받아 서울시향 신년회를 보러갔다. 세종문화회관으로 가는 길에 갤러리 현대에서 1월6일부터 2월26일까지 김환기 회고전을 한다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봄의 소리 (1969)

사실 미술감상을 즐기지만 그에 대한 지식은 문외한에 가까운 터라, 김환기(1913-1974)하면 떠오르는 것이 엄청 큰 캔버스 가득 찍힌 점과 한국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란 것 밖에 없었다. 다른 전시회에서 점을 무진장 찍어놓은 – 전면점화 – 그의 작품을 몇 번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때마다 추상의 불가해성 앞에 절망하고 작품을 제대로 느끼지 못 한 경험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친김에 바로 다음날 갤러리현대로 향했다.

이번 전시회는 작품 수가 많은 관계(65점!)로 본관과 신관 양쪽에서 전시가 되고 있다…는 걸 모르고 늘 하던대로 신관으로 먼저 갔다.


북서풍 (1965) (출처 : 도록) (대충 찍은터라 뭉개졌.. 참고로 도록이 작품 색감을 잘 못 살렸다는게 아쉬운 점)

신관 1층엔 그의 60년대 중후반 작품이 걸려 있었다. 전면점화 작품만 본 기억이 있어 약간 생소했지만 역시 그의 작품이란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시기는 전면점화로 가는 과도기인 듯 캔버스는 크지만 특유의 빼곡한 점이 보는 이를 압도하는 느낌은 없어 오히려 감상하기엔 편했다.

아는 것이 없는 나에겐 감상하기 힘든 동시에 재미있는 것이 추상이다.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내 상상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관 1층에 걸린 그림을 보며 내내 생각했다. 처음부터 점을 화면 가득 채웠던 것이 아니라면 그는 왜 후기로 갈수록 점을 점점 더 채워나갔을까? 과연 그에게 점의 의미란 무엇일까? 왜 그의 그림은 일견 따뜻해 보이는 듯 하면서도 이리도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질까?

그러한 의문을 가진 채 2층으로 올라갔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출처 : 파이낸셜 뉴스)

2미터가 넘는 큰 화면에 가득한 점들. 내가 알던 김환기의 그림이다.

헌데 멀리서 언뜻 보면 꽃잎이 날리는 듯 아름답지만 유심히 보니 말 못할 쓸쓸함이 엄습한다. 1층의 작품보다 더 하다. 왜 그럴까 가만히 보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그의 그림엔 면과 점은 있지만 선이 없구나.

대형 캔버스 속 수많은 점들은 수많은 사각면 속에 들어있다. 면에 갇힌 점. 그것은 한 개인, 더 나아가 모든 객체 하나하나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면이 상징하는 틀은 외면의 껍데기일 수도, 내면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너와 나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걸 말하는 듯 하다. 거기엔 선은 없다. 거기엔 이음은 없다. 세상에 무수히 많은 너와 내가 있지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결코 닿을 수가 없다. 이 무거운 단절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을 하니 이 외롭고 쓸쓸한 느낌이 이해가 되었다. 간혹 명징하게 찍히지 않고 번져있는 점은 옆의 그것과 닿고 싶어하는 그리움이 터져 나오는 듯 보여 더 슬펐다.

그러다 이 그림을 보았다.

무제 #205 (1971) (출처 : 도록)

사진이 구려서 (솔직히 도록의 색감도 좀 구리다) 안 보일수도 있지만, 거대한 3차원 구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림이다. 문득 영화 매트릭스의 시스템이 떠오르며 세상을 관장하는 절대자의 관점이 이 그림에서 느껴졌다.

단순히 먼 타국에서의 그리움과 단절만으로 이러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구나. 절대 고독과 직면해 어떤 경지에 이른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에게 그림은 구도이자 선(禪)일테니…

2층을 보고 지하로 내려갔다. 무심코 그렇게 했는데 순서상 그게 맞다. 지하엔 그가 죽기 전인 72~74년도 작품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10만개의 점 (1973) (출처 : 매일경제)

지하에 내려가자마자 놀란 것은 그림에 선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선은 ‘이음’이 아니라 ‘경계’였다. 그 선은 오히려 단절을 더 뚜렷히 해주고 세상은 좀 더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고요 (1973) (출처 : 도록)

별과 천체가 운행하는 듯한 운동성이 느껴지는 그림의 제목이 고요. 그는 정말 깊은 고독 속에서 절대자와 마주했을 것만 같다.

무제 #335 (1974) (출처 : 도록)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까? 그가 이른 나이에 생을 마친 1974년의 작품은 푸른빛이 가득하던 72, 73년의 작품과는 달리 검은색으로 이뤄져 있다. 더 큰 고독과 더 큰 슬픔 속에서 뭔가 놓아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은 왜일까?

먹먹한 가슴을 안고 신관에서 빠져나와 찬 공기를 폐 속 깊이 밀어 넣었다. 몇몇 작품은 수차례 본 것들인데 왜 이런 감정을 못 느꼈을까 의아해하며 본관으로 이동.

본관에는 그의 구상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사실 김환기 작품에 구상도 있는지 전혀 몰랐다. (나의 얕음이 부끄러울 따름)

영원의 노래 (1956) (출처 : 토피넷)

처음 본 그의 구상은 추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한국전쟁 – 당시 해양종군단에 소속되어 화가로 활동했다고 한다 – 이후의 그림들은 서정적이고 한국적인 느낌이 가득해 그야말로 따뜻했다. 한국전쟁 땐 아무래도 색과 분위기가 어둡다.

출처 : 노컷뉴스?(여기 기사가 좀 제대로)

기사에서도 그렇고 찾아보니 전쟁의 아픔을 나타내기엔 밝은 색에 경쾌한 느낌이 난다고 하는대, 그래서 현실감각을 잃은 작품이란 비판을 받았다고 하는대, 전쟁 이후의 그림과는 현격히 다른 느낌이라 난 전혀 모르겠다. 내겐 매우 음울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걸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2미터가 넘는 추상과는 달리 구상은 주로 소품 위주였는데 누군가 그의 작품을 한 점 준다고 하면 (추상의 가격이 훨~씬 비싸겠지만) 추상 대작보다는 구상 소품을 택할 것 같다. 아직까진 절대 고독을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

귀로 (1950년대 — 정확한 년도 표시가 없다) (출처 : 도록)

좋았던 작품을 몇 개 소개하자면 위의 영원의 노래와 귀로. 생선을 머리에 이고, 왼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소녀. 소녀의 뒷편으로는 구름일테지만 희망의 덩어리를 왼옆구리에 끼고 가는 듯도 하다. 뿌듯해하는 소녀의 미묘한 표정은 사진으로는 볼 수가 없다.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다.

항아리 (1955-56) (출처 : 이데일리)

항아리.. 말이 필요없다. 그냥 좋다. 참고로 검정색 길쭉한 것은 작가가 자주 그리는 매화의 모티브. 그 밖에도 감상도 쉽고, 따뜻한 좋은 작품이 아주 많다.

전시를 보며 무엇보다 놀란 건 그의 부지런함. 작품년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한 공간에 그려진 작품이 대부분 한해에 그려진 것들이었다. 집에 와 기사를 보니 하루 16시간씩 그림을 그렸고 작품도 3000여 점을 남겼다니 그럴만도 했다.

추상과 구상의 느낌이 극명하게 다른 전시. 고독에 푹 빠졌다가도 따뜻함을 품고 끝난 재밌는 관람이었다. 오히려 초기작이 아니라 후기 추상부터 보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음번에는 구상부터 감상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성인 표 한 장 5,000원 밖에 안하니 한 번씩 보시길. 전 두 번 이상 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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