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나라에서 – 치밀한 즉흥의 나라에서

(스포가 있을수도)

내가 애초부터 홍상수 영화를 즐긴 것은 아니었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을 보고 반한 정유미란 배우 때문에 마음 먹고 극장에서 혼자 본 <옥희와 영화>는 극장을 나서는 내게 거북함만 안겨줬을 뿐이었다. 홍상수의 전작보다(이 전엔 <생활의 발견>, <극장전> 정도만 봤을 뿐이었다) 더 거북했던 건 찌질함으로 가득한 남자 캐릭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뒤틀리고 꼬인 시간축과 에피소드 형식의 스타일이 낯설게 느껴져서기도 했으리라.

한참이 지나고 올해부터 홍상수의 다른 작품을 보기 시작했다. <오! 수정>, <해변의 여인>, <밤과 낮>,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첩첩산중>, <하하하> 그리고 <북촌방향>까지… 순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한 편 한 편 보면서 홍상수 월드의 매력이 어떤 것인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 <다른나라에서>를 극장에서 보았다.

결론적으로 무척이나 재밌게 보았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때의 상황이 상당히 불편했음에도 말이다. 왜그럴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무래도 홍상수 감독의 광팬이신(이미 <다른나라에서>는 4회차 보셨다고…) 트친 @femmefanat님의 이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여러 작품을 보고 면역이 되어 그럴수도 있겠지만) <다른나라에서>에선 캐릭터의 여러 모습이 (영화적인) 과장된 혹은 직설적인 찌질함 보다는 자연스런 찌질함으로 느껴졌고, 탐구하는 세계가 ‘한국남자’ 뿐 아니라 ‘인간 전체’로 확장되고 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보고나서 일단 ‘편안’했다. 인간의 ‘이면’이 아니라 ‘이면’을 그린다는 내들리님의 평은 정말이지 적확하다.

이미 스토리와 여러 의미를 정리하고 해석한 훌륭하고 친절한 평이 있기에 – 내들리님, 모던보이님 – 중복되는 이야기는 생략하고 내가 느낀 점만 두서없이 늘어놓고 싶다.

비단 이 영화 뿐 아니라 홍상수 영화를 보며 개인적으로 받은 느낌은 ‘이 사람 이거 그냥 던지는구나’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의문점을 유발하는 이야기 사이의 공백이나 여러 장치가 전혀 의도한 게 아니라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배치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여러 해석을 낳는 작품의 (거의) 모든 창작자가 해석은 감상자에게 맡긴다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원작자로서 의도한 면이 없지는 않을진대, 홍상수는 그게 거짓 하나없는 진심인 것 같다. 정말이지 아무런 의도없이 즉흥적으로 장난을 쳐놓고는 몰래 숨어서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훔쳐보는 아이같달까?

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면 볼 수록 의도되지 않고서는, 그것도 아주 치밀하게 의도되지 않고서는, 이야기 사이에서 혹은 영화와 영화 사이에서 느껴지는 유기성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그의 영화를 볼 때, 머릿속에서 여러 의미를 찾으면서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거 참 재밌다.

이 영화는 빚에 쫓겨 도망간 부안의 한 펜션에서 어머니(윤여정)랑 기거하는 시나리오 작가인 딸(정유미)가 쓰는 단편 습작으로 이뤄졌다. (이어지는 단락부터 매우 두서가 없다. 그리고 단락 끝에 ‘아님 말고’나 ‘별의미는 없지만’을 추임새로 넣으면 좋다.)

재밌는 것은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다른나라에서>라는 영화) 속에 이야기(시나리오 작가의 단편)가 펼쳐지는 셈인데, 세 번째 에피소드가 끝나며 (영화 속의 실제인) 시나리오 작가의 정유미의 세계는 자연스레 잊혀진다는 점이다. 위에 링크 걸어놓은 모던보이님은 다른 의미로 인셉션을 언급하셨지만, 인셉션 같은 경우 하나의 세계를 닫고, 닫고, 닫으며 완결성을 이루지만, 이 영화는 킥이 없음에도 완결성을 이뤘다(고 착각하게 한다). 물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질문이겠지만 여러 감상평을 찾아봐도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정유미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거다.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정유미가 부안까지 오게 된 이유는 외삼촌이 빚보증을 써서 집안을 말아먹었기 때문인데, 이어지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온 권해효와 문소리는 영화 속 실제 세계의 외삼촌과 이모가 아닐까?

영화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이뤄지는데 두 번째 앙느가 우산을 숨기고 세 번째 앙느가 그걸 쓰고, 세 번째 앙느가 만년필(몽블랑)을 도올에게 뺐고, 첫 번째 앙느가 바로 그 몽블랑으로 유준상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세 번째 앙느가 마시고 해변가에 던진 소주병이 아마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의 깨진 소주병이리라. 이런 장치들로 생각을 해보면 ‘굳이’ 시간적 순서를 따져보면 2-3-1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시간적 순서를 따질 필요가 없는게 각기 분리된 에피소드이고 시나리오 작가인 정유미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이다. 하지만 관객들이 자연스레 연관짓고 궁리하게 만드는 게 홍상수의 힘이겠다. 아참. 한국의 중에게 프랑스인인 앙느가 프랑스제 만년필을 뺐은 건 꽤 의미심장하…긴 한대 이것도 별 의미 없겠지 뭐.

이야기의 순서는 그렇다고 생각이 들지만, 주인공인 앙느라는 여자의 변화 혹은 성장으로서의 순서는 1-2-3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별 의미없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앙느는 할머니에게 길을 물은 다음 장면에서,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뉜 길을 마주하고 왼쪽을 택한다. 그곳에서 원래 목적지인 등대 대신 안전요원life guard인 유준상을 만나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앙느는 아까의 그 길에서 오른쪽을 택하고 등대에 간다. 그곳에서 문성근을 만나는 달콤한 꿈을 꾸지만 낚시꾼 아저씨의 터치에 깨버린다. 이후 또 왼쪽길로 가서 유준상을 만난다. 이 때 다시 등대가 어딨냐고 유준상에게 묻고 작은 램프를 들며 자기가 작은 등대라고 하는데(그런데 이 부분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헷갈린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등대 자체를 꿈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기면 기고 아니면 어떻겠냐. 세 번째 이야기에서 앙느는 유준상과 자버리고는 알 수 없는 길로 홀연히 떠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첫 번째 앙느는 짙은 녹색의 차분한 옷차림과 차분한 목소리와 제스쳐를 가졌으나 정해진 틀을 벗어나질 않았다. 두 번째 앙느는 빨간색의 드레스와 통통 튀는 걸음걸이로 길의 오른쪽과 왼쪽을, 꿈과 현실 세계를 오가며, 게다가 불륜이라는 모험까지 하는 탐험정신을 가졌다. 세 번째 앙느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합친 느낌으로 차분한 듯 하면서 돌발적인 느낌을 가졌다. 만년필을 뺐고, 유준상과 자고.. 그리고 결국 윤여정에게 보낸 문자 내용대로 첫 번째, 두 번째 앙느도 택하지 않은 자기만의 길로 걸어가버렸다.

이런 면에서 앙느 개인의 성장은 1-2-3의 순서가 맞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러한 내 판단에는 가방과 등대/안전요원이라는 요소도 작용을 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앙느의 가방은 꽤 큰 편. 하지만 세 번째 앙느의 가방은 작았고 또한 이혼을 했다. 앙느라는 개인으로 짊어진 게 없이 홀가분하다는 것. 또한 등대는 길을 비춰주고 안내하고 배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유준상이 맡은 안전요원의 역할도 지켜주는 역할이다. 하지만 배는 등대로 돌진하면 안되고, 안전요원의 도움도 아니 받는게 상책이다. 해서 난 등대와 안전요원의 상징성을 동일하게 해석을 했는데, 마지막 앙느가 유준상과 자버린 행위를 등대라는 안전장치를, 보조장치를 깨부셔버린 걸로 받아들였다. 등대를 부시고 나서야 앙느는 누구의 도움도 안내도 필요없이 자기만의 길로 홀연히 걸어갈 수 있었던 것으로… (아 물론 앞서 이야기 했듯, 아님 말고다)

여기까지는 앞서 감상평에 없던 내만의 제멋대로 해석이고, 영화 전체 스토리 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의 모든 장면엔 그 장면을 주로 이끌어가는 인물이 있길 마련인데, 개인적으로 그 장면의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이 되는 인물들의 연기를 눈여겨 본다. 홍상수 영화를 점점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그러한 연기가 정말 깨알같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세 번째 에피소드의 고기 구워 먹는 장면 – 첫 번째 에피소드와는 불판 위치가 다르다 -까지만 해도 권해효가 위빼르에게 사심이 없었다. 사실 있을만한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이겠다. 그런데 그 고기 구워 먹는 장면에서 위빼르가 아들과 통화하려고 일어서는 장면에서 아주 잠깐 위빼르의 다리를 훑어보던 권해효의 눈빛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그 찰나에서 욕정의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문소리의 눈빛… 정말이지 깨알같았다. (나중에 디비디로 나오면 다시 돌려가며 보고 싶다)

또 한가지. 정유미는 <첩첩산중> 이후로 (그 전에도 찍었는지 잘모르겠다) 홍상수와 작업을 많이 하는데, 이제는 홍상수의 여성으로서의 페르소나가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홍상수가 그리고 싶은대로 그릴 수 있는 백지 같은 배우랄까? 무튼 I’m not kind.에선 뒤집어졌다 정말.

홍상수 영화는 보고나서 재밌게 본 사람끼리 이야기하기 정말 좋은 영화인 것 같다. 홍상수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아님 말고’라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탑재되었을테니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고 싸울 일도 없을테고.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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