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나들이

매년 5월과 10월이면 살랑거리는 바람이 간송미술관 개관의 소식을 물어다주곤 한다.

군시절 오주석님의 <한국의 美 특강>이란 책에 감명받아 한국화에 빠진 이후 꼬박꼬박 간송을 다녔지만, 몇 해 전부터 평일에도 줄이 경찰서 앞까지 서있는 걸 보고 기겁을 해 아니 간 적도 있었더랬다. 사실 줄 서서 기다리는 것 보다는 들어가서 맘편히 보지 못하는 게 싫어서 말이다.

2012년 5월 17일. 올해는 가려고 마음 먹은 날, 사람에 치여 관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포기를 했다가, 아래의 뽐뿌질에 못 이겨 에라 그냥 길을 나섰다.

한성대입구역에서 마을버스 3번을 타고 간송미술관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반 경. 어라? 줄이 없다. 미술관 입구를 지나 간송의 명물(?) 흰 공작 근처에 가서야 약간의 줄을 발견. 기다렸다.

2012년 5월 전시명은 <진경시대 회화전>. 내 얕은 이해로는 진경(眞景)이란 단어는 ‘조선의 진짜 경치’ 보다는 중국의 화풍에서 벗어나 ‘조선만의 화풍’에 더 가깝게 들린다.

‘진경’하면 떠오르는 것이 ‘산수화’요 ‘정선’인데, 역시나 다소 큰 작품을 걸어놓는 1층엔 <금강전도>를 연상시키는 <풍악내산총람>을 비롯, 겸재만의 독특한 산수화가 그득하게 들어차 있었다. (참고로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는 리움에 있는데, 리움에서 한국화 전시회 하면 간혹 걸리니 가서 꼭 보시길!)

이건 겸재의 <門岩>이란 작품인데, 문을 형성하는 오른쪽 바위에 창(窓)도 나있는 게 재밌다. (도록을 조악한 화질로 찍었는데…이는 가서 보시라는 의미..라기 보단 조명 맞춰 찍기 귀찮..)

겸재 특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시명 탓에 1층엔 겸재의 초충도도 두 점 있었는데.. 겸재도 이런 그림을 그렸구나 하며 놀랬었다. 하지만 역시 산수화가 훨씬 낫더라.

마찬가지의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김홍도는 밸런스 파괴자 처럼 모든 장르에 뛰어나지만 산수화는 조금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1층엔 김홍도의 산수화 중에서도 (당시 유행이라 그냥 좀 따라해 본 듯한) 진경 풍의 산수화를 전시해놓아 정선의 그것과 더욱 비교가 되었다. 그래서 ‘김홍도의 굴욕’이란 표현이 나왔으리라..

확실히 겸재의 산수화 보다는 못 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걸 보면..도대체 어디서 굴욕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그 밖에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꼽자면,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난.

특히 오른쪽의 <녹죽>은 유덕장의 대작인 <설죽> 밑에 있었음에도 은근한 매력을 발하며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바로 이것.

김홍도, <조환어주>

뱃전의 굵은 선, 뱃머리의 날렵한 선, 길게 쭉 뻗은 돗대와 거기에 걸려 있는 몇 마리의 생선 그리고 세상의 시비와는 상관없는 듯한 노어부의 뒷모습까지… 모든 선 하나하나 독특하고, 구도와 여백이 그야말로 예술이다. 한동안 넋 놓고 봤다. 도록에 따르면 단원 후기의 작품이라는데, 아래의 <염불서승도>와 마찬가지로 난 단원 말년의 작품이 참 좋다.

아..이건 이번 전시에 없음

또하나 소개를 빼먹으면 안되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간송 본인이 그린 이 작품

간송, <묵국> (출처:c일보)

여지껏 간송미술관을 다니며 간송 전형필 선생이 그린 작품은 처음 보는데… 보자마자 아방가르드란 단어가 생각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화폭을 이상적으로 나눠 가진, 취한 듯 흐르는 글과 그림의 어울림?(알고보니 진짜 취해서 썼고 그렸고, 글은 월탄 박종화, 그림은 간송이라고..)?생명력이 그대로 느껴지는 국화와 전위적이다 싶을 만큼 환상적으로 멋진 화병… 그리고 꽃과 화병 그 둘 사이의 비율.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이런 실력이 있으니 그런 안목이 있는 것이고, 그런 안목이 있으니 돈을 그렇게 쓸 수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은 순간이었다.

사실 이 포스팅을 쓰는 것도 순전히 간송의 <묵국> 때문. 아… 화병 정말 멋지다.

…..여기까진 감상 및 마음에 드는 작품 소개였고, 불만사항을 토로하자면,

우선 간송에 갈 때마다 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바로 유리. 유리가 울퉁불퉁한지 작품을 볼 때 왜곡이 너무 일어난다. 1층도 그렇지만 2층이 더 심하다. 매번 ‘제발 좀 바꾸기’라 생각하며 감상한다.

두 번째로는 관람 매너.. 사람이 많다보니 2층에선 입장부터 퇴장까지 줄을 세우더라. 오랜만에 간송을 가서 그런가 내겐 새로운 제도(?)였는데… 기분이 좋진 않았다. 줄 선다는 사실이 나쁜 게 아니라, 뒤에 사람들 기다리니 빨리 좀 가실게요…라는 도슨트(?)의 말이 마음에 안들었는데…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면 진득하게 봐야하는 것 아닌가? (물론 진득하게 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빨리 보고 싶은 사람은 앞선 사람을 넘어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층에서 정체를 일으키던 주범은 다름 아닌 신윤복이었는데 사람들이 거기에 몰려 잘 움직이질 않았다. 난 신윤복은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여서 다른 작품을 더 집중적으로 감상을 할 수 있어 좋았지만.. 사람들이 신윤복에 집중하느라 옆의 변고양이라 불리는 변상벽의 고양이 작품을 그냥저냥 넘어가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아니 이걸 휘릭 넘어가 어째…

하긴 간송이 이렇게 인기가 있어진 것도 예전 바람의 화원이란 드라마를 통해 신윤복이 확 뜨고 나서인 것 같기도 하다. 신윤복의 작품이 감상도, 이해도 쉽고 재밌으니까 인기가 좋다고 생각을 하지만…그래도 사람들이 너무 거기에만 집중을 하니 아쉬울 따름.

1층과 2층을 한 순배 보고나니 5시 반 경. 6시에 관람이 끝나는지라 사람이 별로 없다. 그 때부터는 마음껏 내가 더 보고팠던 작품을 오랫동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앞으로도 4시 반 경에 가야겠다.

관람을 마치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를 향해 걸어오는데 주린 배가 참나무 구이 통닭을 찾았다. 맛있더라. 앞으로 간송 올 때 마다 먹어야지(…)

결국 오늘의 주인공은 이놈이라는 소식(…)

…아 잠이 와서 날림 포스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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